연이은 좌절과 함께 몸에 밴 나태함을 털어내고 싶었다. 운동이 그 계기가 되리라 기대하며 크로스핏을 시작했다. 테니스를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혜선의 추천으로 크로스핏을 시작했다. 지난달 10일부터 운동을 시작했으니 이제 6주를 채웠다. 허리 통증으로 쉰 하루를 빼면 총 29일(주 5회) 운동한 셈이다. 올해는 실패로 점철된 한 해였는데, 이렇게 얻은 작은 성취가 위안이 된다.

무리하지 않고 서서히 근력과 체력을 보강할 생각이었지만, 막상 박스에 들어서서 땀을 흘리기 시작하면 그 에너지(아마도 아드레날린)에 매료되어 적당히 하기가 힘들다. 하나라도 더 해내고 싶고, 선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한계 너머를 갈망하게 된다. 운동의 매력은 이 선명함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쉬이 눈으로 목격할 수 있는 과정과 결과 덕분에 몸과 함께 마음도 정직하게 움직인다.

기본 근력이 부족한 지금은 회복을 위한 휴식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첫 주는 삭신이 쑤셔서 일에 집중하기도 어려웠고, 첫 2주 동안은 졸음이 쏟아져 낮잠을 자야했다. 지나서 글로 적으니 말이 그럴싸해질 뿐, 한계까지 밀어붙이고 말고 할 기본도 안 되어 있었다.

근신경(?)이 아직 살아있는지 생각보다 빠르게 몸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3주 차가 지났을 때 3kg 나 증량된 상태였다. 몸통과 팔뚝이 굵어진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운동 첫날 인바디 측정을 해둘걸, 정량화된 변화를 남길 수 없는 게 아쉽다. 5kg 증량을 목표로 잡고 있었는데 벌써 60% 달성이라니. 빠른 변화에 놀랐다. 많이 자고 잘 먹은 덕이 크지 않나 싶다. 휴일에는 10시간 이상 자고 있고, 운동을 시작한 뒤로 식탁에 고기가 자주 올라왔다. 운동 전/후로 미숫가루와 두유, 그리고 단백질 보충제를 함께 먹고 있다. 운동 후 폼롤러로 근육을 풀어주는 것도 회복에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운동하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서 모르는 용어가 태반이었다. 크로스핏은 2001년 미국에서 시작됐다고 하는데, 그 덕분에 우리에게 익숙한 질량의 기본 단위인 킬로그램이 아니라 영미 단위계의 파운드를 사용하는 것 같다. 웨이트 경험이 없어서 자세를 익히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코치님은 물론이고, 빈님과 진열님 그리고 지훈님에게 도움을 받았다.

3주 차부터는 여유가 생겨서(근육통이 참을만해짐) 알 수 없는 용어와 따라 할 수 없는 동작을 인터넷에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턱걸이는 자신만만한 종목 중 하나였는데, 턱걸이 종류가 그렇게 많은지 여태 몰랐다. 6주가 지난 지금은 대부분의 동작을 대충이라도 따라 할 수 있게 됐다. 와드 중에 파워클린 자세에 감이 딱 온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오, 감사합니다. 코치님. 무게가 가볍기도 했지만, 팔 힘을 많이 안쓰게 되자 이거 요령만 늘고 운동이 덜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마저 들었다. 힘 쓰는 기초적인 방법을 깨달은 것 뿐 전체적인 자세는 여전히 엉망인데 별 걱정을 다했다. 지금까지 수행한 와드 중에 따라 할 수 없는 동작은 머슬업 하나가 남았다. 근력이 붙었으니 이제 슬슬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내가 얼만큼의 무게를 들 수 있는지 감이 없어서 1RM 측정도 한번씩 해볼까 한다.

검색하면서 크로스핏 생태계가 건강하고 활발하다고 느꼈는데, 룰이 아니라 관계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대중매체를 통해 들은 종래의 운동 협회와는 달리 현대적인(?) 운영 방식을 채용한 것 같았다. 지점 오픈을 위한 Affiliate starter kit도 제공하길레 살펴봤는데, 평균 임대료나 기구 구입비, 보험 가입비를 비롯한 각종 비용과 연간 예상 수익에 관한 자료를 제공한다. 지점은 $3,000의 연간 회비를 내야하는데, 자료에서 제공하는 것처럼 평균 연간 수익을 $50k라고 하면 6%를 가져가는 셈이다. 여느 프랜차이즈 수수료가 이 정도라고 알고 있긴 한데, 그냥 좀 아쉽다. 프렌차이즈가 아닌 제휴affilliate 모델인데다 헤드쿼터만 배불리는 것 같거든. 보다 다양한 비지니스 모델이 있을텐데 말이다. 현재 지점으로 등록된 체육관의 수는 총 11,407 곳이다. 에 등록된 체육관 수로 추정해보면 미국과 유럽, 남아프리카, 오세아니아, 그리고 우리나라에 활성화되어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 365개의 박스가 있다(참고로 일본은 39개).

크로스핏 오픈은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크로스핏 정신이라는 게 있다면 그 정수가 바로 이 크로스핏 오픈에 있지 않을까. 올해 32만명이 등록했다고 한다. 오픈은 온라인으로 누구나 지원할 수 있고, 여기에 상위 25%가 쿼터파이널로 진출한다(올해까지는 10%였던 것 같음). 쿼터파이널에서 지역별 남/여 각각 40명씩을 추려서 세미파이널로 진출하고 결승을 게임즈라고 부르는 것 같다. 2024년 결승은 미국 텍사스에서 열린다고. 이제 막 운동을 시작한 주제에 어찌나 불타오르는지 이번 주말 내내 경기 영상을 찾아봤다.

크로스핏 수업은 전형적으로 6단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이런 기본 틀이 드랍인 문화와 함께 선수는 물론 코치 스스로를 발전시킬 계기가 되는 것 같았다. 다른 박스에서 다른 수업을 듣는 것이 곧 피드백으로 선순환을 가져올테니까. 크로스핏에서 코치의 역할은 핵심적이고,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확장하는 유일한 방법은 양질의 코치를 양성하는 것일테니 이 시스템은 주효해보였다. 인증서는 Level 1 부터 Level 4 까지 총 4 종류가 있다. Level 1의 경우 $1,150의 시험비가 있고 3년 뒤 갱신비용 $1,000이 발생한다. 그 뒤로 5년 단위로 인증서를 갱신해야 한다. 다른 레벨도 비슷하게 비용이 발생한다.

여유가 생긴 3주 차부터는 와드를 빨리 끝내는 것보다 마지막까지 오래하는 사람이 가장 운동이 된다는 걸 깨닫고 올바른 자세에 신경쓰는 한편 무게와 횟수를 늘리기 시작했다. 가능하다면 매일매일 쥐어짜내고 싶다. 내 일을 잘하기 위해 시작한 운동인데, 이러다 주객전도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무릎이나 어깨는 힘들다고 힘을 빼버리면 바로 부상당하기 십상인 것 같다. 초반에 배치기 턱걸이kipping pullup하면서 어깨에 무리가 갔고, 역도의 인상snatch 동작을 하면서 무릎에 무리가 갔었다. 근육을 긴장시키지 않고 그냥 주저앉아 받아버린 게 원인인 것 같았다. 그 이후로는 의식적으로 해당 근육을 계속 활성화했기 때문인지 6주가 지난 지금은 통증이 거의 사라졌다. 허리 통증이 남아있는데 이건 자세 문제인지, 근력이 부족한건지, 디스크인지 잘 모르겠다. 좀 지켜보다 병원에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무릎보호대와 장갑은 필수 장비가 아닐까 싶다. 특히 무릎보호대는 무게를 지지해 줄 만한 근력이 부족하거나 자세가 올바르지 않은 나와 같은 초심자에게는 필수였다. 장갑은 굳은살 방지용이기도 하지만, 클린 같은 동작을 할 때 바에 쓸려 엄지 쪽이 까지기 때문에 필요했다. 처음에는 헬스장갑을 샀다가, 훅그립테이프와 손바닥 보호대로 갈아탔다. 매달릴 때 손바닥 보호대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아직 무거운 무게를 들지 않아서 허리 보호대는 사용하고 있지 않은데, 조만간 팬심으로 공식 스토어에서 살지도 모르겠다.

서로 ~님 호칭을 일반적으로 사용한다는 걸 미리 캐치하지 못하고 지훈님께 형이라 부르면 될지 물었다. 경솔했다. 호칭 뒤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경직된 관계의 역학을 꺼려왔으면서 왜 그런 질문을 쉽게 해버린 걸까. 운동 후 흥분상태에서는 언행을 조심해야겠다.

강도 높은 운동을 함께 하는 것이 관계를 맺는 데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개고생한 프로젝트의 순간들이 기억에 가장 남는 것처럼, 기름기 한 방울 남기지 않고 탈탈 털어버린 강도 높은 운동의 경험은 인상적이고, 그 경험을 공유한 동료들에게 유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노력은 욕구를 억압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언제나 감정의 응어리를 수반하고, 그 지점에서 우리가 감동하고 전율하는 카타르시스가 있는 게 아닌가 싶고. 기계적인 일상을 채워나가는 것이 결국 이토록 인간적인 감정의 발로라니 삶은 어떻게 봐도 부조리하다.

기본 용어

  • 박스
    • 체육관을 박스라고 함
  • RM
    • Repetition Maximum
  • WOD(와드)
    • Workout Of the Day
  • RX’d
    • WOD 규정 강도(무게)
    • 규정 강도 외에 A/B/C 순으로 스케일링된(강도를 낮춘) 무게들이 있음
    • RX’d가 처방전prescription 에서 온 말이라는데 더 이해가 안됨
  • AMRAP
    • As Many Round As Possible
  • C/F
    • 레코드에 가끔 C 또는 F를 적는데 Clear 또는 Fail 을 의미함
  • Metcon
    • Metabolic Conditioning Training
    • 이 글에 따르면 “대사 경로를 활성화하는 모든 운동을 포괄적으로 일컫는 용어”라는데 잘 모르겠음
  • EMOM
    • Every Minute On a Minute
  • 체력의 10대 요소
    • 심폐지구력cardiovascular and respiratory endurance
    • 체력stamina
    • 힘strength
    • 유연성flexibility
    • 파워power
    • 스피드speed
    • 협응력coordination
    • 민첩성agility
    • 밸런스balance
    • 정확성accuracy
  • 힘strength과 파워power 차이
    • 힘strength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최대 출력(근력)을 말하는 것 같고
    • 파워power는 그 힘strength을 얼마나 빠르게 뽑아낼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힘보다 한차원 높은 개념이라고. 여기에서 참고함

수행한 와드 동작

회차 날짜 동작
29 11월20일 Plank Hold, Double Under, Push Up
28 11월17일 Hang Power Snatch, Pull Up, Mountain Climb
27 11월16일 Row, Kettle Bell Swing
26 11월15일 Thruster, Power Clean
25 11월14일 Partner Farmers Carry, Jump Squat, Push up, Double Under
24 11월13일 Burpee Box Jump Over, V-Sit up
23 11월9일 Row, Burpee, Wall Ball Shot
22 11월8일 Deadlift, Hang Power Clean, Push Jerk
21 11월7일 Muscle Up, Push Up, Box Jump
20 11월6일 Dumbbell Russian Twist, V-Sit Up
19 11월3일 Dumbbell Snatch, Dumbbell Box Step Up
18 11월3일 Row, Wall Ball Push Press
17 11월1일 Front Squat, Floor Press, Rainbow Plank
16 10월31일 Snatch, Lateral Over Bar Burpee
15 10월30일 Double Under, Pull Up, Wall Walk, Sit Up
14 10월27일 Row, Dumbbell Push Press, Toes to Bar
13 10월26일 Double Under, Wall Ball Shot, Squat Clean
12 10월25일 Handstand Push Up, Sit Up, Air Squat
11 10월24일 Muscle Up, Kettle Bell Swing
10 10월23일 Deadlift, Synchronized Bar Facing Burpee
9 10월20일 Thruster, Double Under
8 10월19일 Air Squat, Sit Up, Push Up, Run
7 10월18일 Dumbbell Snatch, Burpee Box Jump Over
6 10월17일 Clean & Jerk, Deadlift, Wall Ball Shot
5 10월16일 Weighted Pull Up, Weighted Hanging Leg Raise, Weighted Jump Squat
4 10월13일 Power Snatch, Box Jump, Double Under, Front Squat
3 10월12일 Row, Push Press, Sit Up
2 10월11일 Deadlift, Wall Ball Shot, Burpee
1 10월10일 Kettlebell Swing, Kettlebell Clean, Kettlebell Thruster

시간표

하루를 크게 네 덩어리로 나누었다:

  • 첫 번째 덩어리 - 집중력을 요구하는 주요 업무 (4:00 ~ 6:00)
  • 두 번째 덩어리 - 기본 업무 (9:00 ~ 11:00)
  • 세 번째 덩어리 - 보충 업무 (12:30 ~ 16:30)
  • 네 번째 덩어리 - 나머지 공부 (18:00 ~ 20:00)

하루 8시간을 업무에 투여하고, 2시간은 나머지 공부, 그리고 7시간을 수면시간으로 할당했다.

2024년 오픈 후기

운동 6개월차에 크로스핏 오픈이 열렸다. 참가 신청도 하고 저지 등록도 했다.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