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을 무한히 확대하거나 무한히 축소할 때 그에 대한 우리의 익숙한 감각은 부정되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과는 다른 역설이 발생한다. 유한 속에 무한이 기능하고, 순간 속에 영원이 존재한다. 사소한 티클 하나에도 우주가 운행한다. 인간을 겸허히 만드는 힘이 이 경이로움에 있다.

의식은 존재를 보장하지만 사고를 제약한다. 알면 알수록 알 수 없는 것이 세상이고, 그런 세상에 필요한 것이 거리와 관용일 것이다. 우주를 배경으로 미소한 지구 주변을 유영하며 영화 “그래비티”는 그것을 말한다.

쉽게 화내고 또 쉽게 잊어버리는 일상으로 가열된 지구는 뚜껑 열리기 직전이지만, 고개를 돌려보면 늘 그곳에 있던 광활한 우주는 그토록 중하고 시급해 보이던 문제들을 일순 무효화시켜버린다. 염치도 체면도 상실한 사회적 공포로 희생된 (어쩌면)숭고한 가치들이 새롭게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순간이다.

중력이란 그 영향권 아래서 의식하기는 힘들지만 일정한 크기로 꾸준히 우리의 세계를 행사하는 시스템 또는 사고의 편협함, 인식의 결계일 것이다. 하늘로 시선을 돌리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하는 일은, 그리고 정말 할 일은 무엇일까?

우주라는 그 광대함에 몸이 쭈뼛쭈뼛해진다. 모든 걸 잊고 그저 그 무한함에, 그 공허함에 몸을 맡기게 된다. 다만 조용한 극장을 찾을 것을 추천한다. 그 거대한 정적도 경박한 소음 하나로 손쉽게 박살 나버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