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극에 부딪히는 것은 삶과 죽음, 옳고 그름과 같은 대립하는 가치의 과잉된 당위가 아니다. 접근하는 행성은 그 멍청한 진리를 가르며 지구로 진입하는 최후의 심판이 아니라 패러다임 밖에 이름 지어지지 않은 모든 공허다.

책장을 뒤져 이미지와 텍스트의 배열로 자신을 호소하는 혹은, 대화를 시도하는 저스틴의 욕구는 불가피하더라도 너와 나의 개별적 올바름으로 이 지구를 폐허로 만들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태도는 접시를 집어 던지지 않는 것, 짐을 내팽개치지 않는 것, 결혼하지 않는 것, 그러니까 적어도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사진에 담긴 마이클의 에덴동산이 불모지가 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저스틴의 ‘남다름’이 공허에 대한 감각이기보다는 보편으로의 편입이라는 사회적 강제에 의한 반작용, 혹은 제멋대로 이해해버린 타인의 애정 어린 시선에 대한 거부반응이라면, 19번 홀이라는 환상은 이해 혹은 오해의 땅에 안착한 뜨거운 연민일 것이다.

어쨌건 종말, 쓸데없는 얘기다. 가치의 부재, 존재의 소멸이다. 유리병 속의 콩 개수 따위를 가소롭게 나불거리며 건방 떨기보다는 풀리지 않은 응어리 그대로 다가오는 행성의 새로운 대기를 호흡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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