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적한 호텔, 고층빌딩 내부에서 바라보는 창 밖 풍경은 고즈넉하고 낭만적이다. 바깥은 찜통이고, 뒷골목에서 풍기는 퀴퀴한 냄새와 불쾌한 인기척은 이번 여행에 취급상품이 아니다. 일상을 벗어난 여행, 창턱을 넘어들어오는 충만함, 피부에 닿아 전율하는 낯선 감각은 바로 이 분리된 공간 속에 잉태한다.

빌딩과 빌딩 사이를 이어주는 매끈한 도로와 다리를 달려 노동은 잊고 일상에서 배제되었던 자아를 연소한다. 바깥의 후덥한 공기는 도로 위에 내뿜어지는 배기가스와 관성적 삶이 분비하는 불감증으로 뒤섞이고, 승용차 안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는 동안 현대화 과정에 있는 도시에서 부랑하는 아이와 거리에서 방뇨하는 꾀죄죄한 아가씨는 그 오물을 뒤집어쓴다. 본인은 이용할 수도 없는 시설들이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외국자본을 등에 업고 자신들의 땅 위에 올려지고, 그 건물에 투숙하는 외국 관광객에게 정작 본인은 가보지도 못한 섬을 안내한다.

문화는 자본을 따라 한 방향으로 흐르고 제국주의는 신제국주의로, 물리적 침략은 간접적 수탈로, 깡패는 정의가 되고 약자는 그 정체성조차 디딜 기반을 잃는다. 자본은 환상을 팔고, 우리는 현실을 외면하거나 기만당한 채 분열적으로 그 환상을 소비한다. 삶은 신음하지만 세상은 절정의 환호성으로 가득하다.

차라리 냉소하라. 거울 앞에 엔리케를 대면하라. 현실인식조차 없이 이 분리된 공간에서 부른 배로 자의식을 채우기 위한 연민과 동정은 키치적이고 분열적이며 가증스러운 것이다.